10

박근령

#박정희 딸

#박근혜 동생

#박지만 누나

#천황폐하 드립

박근령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한국여성바둑연맹 총재. 서울대 작곡과를 나와 육영재단 이사장, 어린이교통안전협회 총재, 한나라당 충북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 총재, 한국재난구호 총재, 세계바둑표준화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7년 14세 연하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전 백석문화대 교수)와 약혼해 2008년 10월 결혼했다.

사기친 죄로 벌금 500만원 땅땅땅

  • *박근령 사기
  • *육영재단 이상 컴백하면
  • *은 뻥
  • *벌금 500만원 확정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사기 혐의로 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 받은 적이 있다. 이게 12월 28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무슨 사기를 쳤느냐면 여러 번의 재판으로 더 이상 육영재단 이사장으로의 컴백은 글른 상황에서 '내가 이사장으로 가면 주차장 임대해줄게'라고 속여 여러 명한테서 계약금 7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96 6

언니와 비슷한 화법 '그런가'

  • *박근령 그런가
  • *한겨레 인터뷰
  • *새 유행어 탄생
  • *그런가
그런가.jpg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한겨레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처음부터 빵 터진다.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한겨레신문이 하도 비판을 많이 해서 부담이 돼 그동안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던 거라고 말했는데 한겨레신문은 그 때 없었다;;ㅋㅋ


한겨레신문 기자가 '한겨레는 1988년 창간한 신문이다'라고 돌직구를 날렸더니 박근령 전 이사장이 말하길 '그런가'. 언니랑 닮았...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예전에 일본 '니코니코'와의 인터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눼눼.jjal


부창부수의 좋은 예

  • *박근령 망언
  • *남편 신동욱 트윗
  • *박다르크 ㅋㅋㅋ
84 2

박근령씨가 일본 인터뷰에서 한 말⑦ - 자꾸 일본 탓해서 미안ㅠ

  • *박근령 발언
  • *일본 니코니코 인터뷰
  • *일본과 싸우면
  • *조상님이 안 좋아해
  • *한류는 다 요시모토흥업 덕분
  •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뭔 문제?
  • *내정간섭 그만 좀
  • *일본 탓하는 뉴스 죄송

-사실 저는 2005년에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서울 홍대에서 열렸는데 한국과 일본의 뮤지션이 함께한 록페스티벌로 한일 뮤지션들의 교류를 위한 시간이었다.


=아아 그 때 필름이 남아있으면 좀. 그 때도 이렇게 머리가 노래셨나요?



-네. 그때도 금발이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미묘했다. 2005년 2월로 기억하는데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해 한일 양국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마침 그런 때라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다 취소됐다.


=2005년이라 그러셨죠? 왜요? 왜 중지가 됐죠?



-... 다케시마의 날이 제정되면서 역시 한국측 반발이 컸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닙니까.


........


-일본은 의아해 했다. 단, 제가 갔던 3월 이벤트는 개최됐다. 많은 행사가 취소됐지만 음악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소통된다는 점에서 관계자들이 노력해서 개최됐다. 삼엄한 분위기에서 열렸다. 막상 진행되는 동안엔 일본 뮤지션이 등장해도 야유하는 일 없이 한국인도 모두 즐거워했고 한일뮤지션 교류도 잘 이뤄졌다. 저는 취재를 하러 갔는데 한국인들이 친절하게 대해줬다. 국가끼리는 관계가 안 좋아도 사람끼리는 문화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런 문화교류 중요성을 느끼면서도 최근 문화적 이슈를 보면 세계 문화유산 문제가 있지 않나. 메이지 시대 산업 유산을 등록하려 하자 조선인들이 강제 노동을 했던 곳이라는 설명을 넣느냐 빼느냐는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 한국 반발 때문에 일본인도 다시 반한 감정을 갖게 됐다. 그 예도 있었고 어떤 계기로 관계가 개선될 것 같다 싶다가도 견해 차이로 어긋나고 반감이 고조되는 것 같다. 이러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는요 양국관계가 어디 독도문제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시험문제를 풀 때도 쉬운 것부터 풀어가고. 모르겠어요, 사람에 따라서 어려운 문제를 풀고 쉬운 문제를 푸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쉬운 문제를 먼저 풀고 어려운 문제를 푼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조금 아까 말씀하신 그런 문화교류나 역사교류, 어떤 그런 여러가지의 민간차원에서의 교류가 이웃나라라는 이유로 이뤄질 때 이웃나라만이 가질 수 잇는 독특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발전해 나갈 때 어려운 문제들도 풀릴 수 있는 방법들이 분명히 나온다, 그런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족간에도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해서 오늘부터 같이 밥 안 먹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이 틀리다고 해서 같이 밥 안 먹는다, 이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거는 좀 미뤄두고 또 계속 같이 할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서 할 때 그 방법이 정말 나온다는, 그렇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그렇게 의로운 일을 자꾸 할 때 의로운 일을 하면 하늘이 은밀하게 도와주신다, 그래서 저는 그런 문제도 풀릴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홍대 행사때쯤 2005년을 자꾸 물어본 이유가 바로 고때쯤 노무현 대통령 각하께서 취임하시고 얼마 안 된 시점인데 친일반민족행위라고 저희 아버지를 많이 공격하고 그래서 한나라당의 의원으로 있던 우리 박근혜 의원께서 그 당시에 많은 애로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정치권을 통해서 결국 대통령 후보로도 나가게 되다 보니 정치권쪽에 선거전에 공약을 했다거나 유권자들의 의사를 반영시킨다는 뜻에서 대일관계가 이런 방향으로 나갔다면 이제는 정치인만의 대통령은 아니시고 경제도 챙기셔야 하고, 경제나 정치를 떠나서 사람이라면 인륜지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웃과는 어떻게 지내야 한다는. 또 우스운 얘기지만 이렇게 우리가 이웃이 있으면 저 이웃이 미워 그러면 이사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이사갈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전쟁할 것도 아니고. 그런 점 이런 때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과거의 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된 양국간의 모든 조상님들에 대한 후손들의 도리다. 우리가 막 갈등을 빚고 그러는 거를 하늘나라에서 쳐다보면서 잘 싸운다, 잘 한다 이럴 조상은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해하고 싶습니다.


욘사마 결혼식장에 온 일본팬들.jpg


그리고 꼭 한 가지 여기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까 요시모토흥업에서 우리가 한류, 바로 어저께 욘사마가 저도 욘사마 팬이지만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일본의 팬들이 장사진을 이뤄주셨는지 저는 그런 일본이 좋은 거에요. 그런 일본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고 교류하고 싶고 피곤한 문제를 제쳐놓고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 일본이 그렇게 겨울연가를 비롯해서 일본에서부터 한류가 이렇게 시작된 것도 역시 요시모토흥업에 계신 회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음지에서 붐을 일으켜주신 그 공을 또 한국분들이 잘 모르십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아무리 내가 공부를 잘해서 유학을 가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못 가고 가정형편이 안 되면 못가고 내가 가장 노릇을 해야 하면 갈 수 없고 어떤 여건이 되더라도 3박자가 맞아야 그런 식으로 우리나라 탤런트를 가진 연예인들이 많다 해도 붐을 일으켜줘야 하거든요. 그것을 신...장소 이름? 신..그 저기 한류거리. 신오쿠보 한국의 거리 그런 데가 정말 일본분들이 막 그 한국 연예인들이나 스타들이 좋아서 정말 국경을 초월해서 막 같이 울고 웃으면서 많이 성원을 해주시고 그것이 더 일본에서부터 세계적으로 한류바람을 일으켰는데 그런 드라마에서부터 소위 케이팝까지 아주 세계적인 케이팝으로 기반을 형성해주신 분도 요시모토흥업이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순 없지만 그래서 저는 거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리는데 요즘 자꾸 국교정상화를 후퇴시키는 그런 정치권의 발언들 때문에 그걸 뭐라 그러죠? 친한의 반대가? 반한. 반한정서가 자꾸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거리도 거의 옛날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안타까워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런 그 모습이 다시 재현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이제 앞으로는 우리도 우리 한국의 이렇게 일방통행이 아니라 일본의 도움만 자꾸 받고 우리 기업을 상장시켜주시고 이런 것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무대에도 일본의 가수나 일본의 탤런트 이런 분들이 와서 무대에 서서 한국팬들의 열화 속에서 공연도 좀 하시고 쌍방문화교류가 이뤄지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그게 아마 우리 또 한국에 계신 정말 양국의 관계, 세계평화를 생각하는 분들의 진정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일본 아베 총리와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강경 태도가 국제 정치 상황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도 앞으로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박근령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얼마전에 좀 더 관계를 친밀하게 다져나가겠다고 선포하신 그게 바로 그런 뜻을 표명하신 거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듣다가 잊어버렸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다. 한국과 일본 양국 간에는 매우 복잡한 역사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우선 조금씩 거리를 좁혀 나가기 위해 먼저 이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거나 한일 친선 관계를 강화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또 앞으로 몇십년이 지나면 나아질까? 역시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니.


=저는 좀 예민한 문제라고 얘기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 저의 개인적인 생각, 저도 분명히 한국의 유권자고 대한민국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예를 들어서 우리가 말하는 거,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저희 아버지 시대에서 일제치하, 식민지 하에 있을 때는 아버지가 1917년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1945년에 해방이 됐는데 그때 아버지 28이셨어요. 그럼 아버지께서는 직접 경험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아버지는 직접 그 식민지 통치 하에서 젊은 나날을 보내신 분인데 그 해방되고 20년도 안 돼서 대통령 되신 후에 한일국교정상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웃나라와 이제는 미래를 도모하고 아시아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는 우리나라 건국이념인 홍익의 정신을 우리가 구현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직접 그 식민지 치하에서 일제의 통치를 경험한 분이 괜찮다는데, 이제는 우리가 화합해서 더 큰 미래를 향해서 시너지 효과가 나게 양국이 상호협력하고 더 큰 꿈을 꾸면서 나가자. 매일 한국만 챙기고 일본만 챙기지 말고 아시아를 품고 세계평화에 기여하자.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왜 우리 같이 그 때 태어나지도 않고 겪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손이라면 선대의 유훈과 유지를 받드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국가가 해친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국가를 발전시킨 초석을 놓게 됐다면 그 역사를 이해하고 아 그렇구나 더 잘해야지. 항상 부모는 선생님은 나보다 제자가 자식이 더 잘하기를 바라는 것이 스승과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우리 한국 외교부에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얘기가 나오면 그거는 일본 자꾸 뭐라고 하면 내정간섭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왜냐하면 저희 아버지가 개인적인 일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공인이시기 때문에 대통령을 시해, 암살한 것이지만 아버지께서 그렇게 믿고 의지하셨던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그랬다고 해서 저하고 친한 친구나 그분들의 유족이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그 분의 묘소를 참배했다고 해서 제가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비근한 예를 들자면 저의 3대 할아버지, 5대 할머니 때 아주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우리 우리 쪽의 아버지나 우리 쪽의 선조들이 이웃이나 상대방한테 큰 피해를 준 어떤 일이 있었다 해서 그래도 그 분들의 피와 살을 받아서 태어난 내가 혈손들입니다. 혈손이 어떻게 부모를 자신들의 선조를 참배하지 않습니까. 설마하니 아베 총리께서 야스쿠니 참배 하시면서 앞으로 또 전쟁을 일으켜서 뭐 이렇게 참배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으세요?.jpg
니코니코 영상 캡쳐


지금 일본이 재무장을 시작하는 것은 북한이 핵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는 말할 수 없이 위협적이고 그래서 앞으로 어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겠지만 미국, 한국, 일본의 군사동맹 관계가 지금 오키나와에 해군기지, 공군기지 요코하마에도 있고 그것은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한 군사력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한국정부도 이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 그 때 시대를 이해하고 그 때는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천황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그랬지요. 그러면 그 나라의 헌법인데 왜 다른 나라의 헌법까지 그 헌법이 뭐 어떤 나라를 침략한다든가 그게 아닙니다. 그 나라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 군림할 때 통치하지 않는다는 천황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데 그 군국주의 시절에는 국민이라는 말이 없고 천황의 국민이란 개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천황을 위해서 뭐든 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고 조국에 충성하는 그런 가치관을 살던 시절이었다는 거. 그 당시의 친일과 해방 전의 친일과 해방 후의 특히 그 뭐라고 그러죠?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진 이후에 친일은 전혀 개념이 틀립니다. 그럼 우리가 친일을 하고 친미를 해야지 그 친북을 해서는 되겠습니까? 우리가 친북을 한다면 그거는 우리 제왕적 헌법으로 모셔야 될 국가, 국헌을 위반하는 이적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친일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저는 차라리 친일, 친미를 해서 조국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고 아까 공통분모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다 같은 이념의 지금 일본이 군국주의가 아니고 한국이 제국주의, 어어 제국주의라고 하나요? 우리는 대한제국이었잖아요? 지금 대한민국 아닙니까? 다 이렇게 세계 정세 변화를 빨리 간파해서 시대정신을 잘 살려서 열심히 세계평화에 기여하다가 이 세상을 하직을 해도 해야 한다, 그게 제가 태어난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루한 말씀, 서툰 표현을 그냥 잘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네티즌들에게 한 말씀.


=저야 아버지께서 공인으로 계셨기 때문에 제 개인 아버지의 그런 유지라는 차원을 떠나서 그런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고 한때나마 열심히 사셨던 아버지의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서 한때 그런 아픔의 역사를 이렇게 자꾸 붙들고 늘어져서 미래를 향해서 나갈 힘찬 발걸음을 자꾸 붙잡는 그런 사람들은 양국간의 다시 한 번 각 나라의 안녕과 국태민안(나라와 백성 모두 편안한 상태)을 생각해서 양국간의 좀 더 친밀한 관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각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딸로서 아버지께서는 뭔가 일본과 좋은 기술도 많은 경제 협력도 좀 교류하고 싶어하셨고 또 기술도 좀 전수받고 싶어하시는 그런 염원을 갖고 계셨는데 그것이 여러가지 과거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IT강국이라고는 얘기하지만 우리나라 굴지의 IT산업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은 일본의 핵심기술들을 3,4개월 정도 공급해주지 않으면 참 어렵다는 거를 , 그래서 굳이 그런 경제력만 키워야 된다가 아니라 착하고 강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악하고 강하면 안됩니다.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 한국이 그동안에 가슴 아픈 얘기를 자꾸 한 것을 우리가 위안부의 여사님들을 더 잘 챙기지 않고 자꾸 일본만 타박한 뉴스만 나간 데에 대해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그거는 정치권에서 하는 말만 주로 언론에 실려서 나가기 때문에 그런 뉴스뿐이었을테지만 그런 뉴스가 나가기를 아주 좋아하는 세력과 우리가 맞서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고 우리 한국을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고 일본 국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68 4

박근령씨가 일본 인터뷰에서 한 말⑥ - 언니는 평민이 아니라 못하는 말 내가 대신 하는 걸로

  • *박근령 발언
  • *일본 니코니코 인터뷰
  • *친북=반일??
  • *아베 총리 보니까
  • *아빠 생각남
  • *요시모토흥업 홍보

-방금 말씀하신 내용 중에 일본 총리들이 몇 번이나 사과를 했는데도 한국인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데 바로 그 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많은 일본인이 감사해 할 것 같다. 일본인으로서 당연히 전쟁 당시의 일에 대해 사죄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도대체 몇번 해야 용서해 줄 수 있냐, 이런 생각을 하는 일본인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관계가 새롭게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후 새로운 한일관계에 대해 언급은 안했지만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워낙 그 아까 좀 친북에 가까운 인사들이 굉장히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다보니 그런 부분을 많이 의식하셨다고 생각을 하지만



-말씀 도중 죄송하다. 일본인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좌익과 우익이라 한다면 좌익은 반일 또는 반북의 자세를 취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되나?


=소위 지금 이런 말씀 드리면 참 죄송합니다. 우리나라 얘기를 좀 속상한 얘긴데 아까 미국 국회가 많이 부럽다고 말씀드렸죠. 아버지께서 참 살아생전 부러워하셨던 그것이 바로 싱가폴 정당, 그냥 국익을 위해서는 야당이고 여당이고 한목소리를 낸다는. 그러면 지금 만일 미국이 2차세계대전 때 뭐 진주만 폭격을 놓고 그 때 희생당한 사람들과 그 유족들의 슬픔만 앞세워가지고 미일관계를 잘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동북아 평화는 희망을 걸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보체계에 있어서는 한국과 일본과 미국이 동맹,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고 또 우리가 요즘 중국과 러시아, 중국, 북한이 또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베 수상께서 중국 또 얼마 전에 방문하셔서 시 주석 만나시고 또 푸틴 대통령도 만나시고 그런 거를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볼 때 너무 가슴을 쓸고 정말 잘 하시는 일이다. 그걸 보면서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좀 남한의 어떤 그런 안보가 좀 흔들린 건 사실입니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하는 거 아닙니까? 좀 평화무드로 긴장완화를, 닉슨 대통령이 민주진영의 대표성을 가진 나라로서 그렇게 선포를 했지만 그 때 우리 국방의 과학화도 너무 늦어지고 약속은 했지만, 그렇게 됐었을 때도 닉슨 대통령이 당시 중국 모택동 주석을 만나러 갔을 때 아버지는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뛸 듯이. 아, 저렇게 미국과 중국이 평화모드로 간다면 만나지도 않고 이러는 것보다, 단지 조건은 하나 있으셨죠. 혹시 모택동 주석과 어떤 협상을 벌이실 때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만은 좀 꼭 사전에 우리와 사전 조율을 하고 우리 이야기를 협의해 주셨으면 하는 그 바람 하나는 있었어도. 그런 식으로 한국 정부가 다 못하는 걸 일본 정부가 우리의 열강, 그것도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나라들을 만나서 좋은 외교를 펼치신다면 동북아 평화, 나아가서 세계 평화에 좋은 청신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칭찬 받은 아베 총리;;;;;.jpg


그리고 한국의 여러가지 영토문제부터 중국과도 난제가 있지만 저는 어떤 바람을 갖고 있느냐면 동양권에 있는 사람으로서 일본과 중국과 한국이 같은 동양권에서 동북아의, 말하자면 정신문화, 정신문화를 일으키는 중국이라는 곳에서 옛날에 공자님, 맹자님 같은 많은 성현들이 정신문화를 꽃피우다가 가신 어떻게 보면 성스러운 곳인데 보통 꽃은 핀 데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꽃은 여기서 폈는데 열매는 저기서 맺지 않죠. 정신문화를 꽃피운 중국에서 3국이 손을 잡고 역사적으로 많은 인연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동양권에 많은 나라가 있지만 세 나라가 딴 차원에서 정신문화의 열매를 맺는 통일문화권으로 갔으면 한 쪽에선 그런 바람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영토문제도 정신문화를 서로 협상하고 서로 교류를 하고 사상을 교류하면서 한국은 중국을 배우고, 중국은 한국을 알려고 노력하고 일본은 또 한국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한국은 일본의 좋은 점을 배우고. 이러면서 동양권의 공통분모인, 옛날부터 물질은 서양에 있고 정신은 동양에 있다, 이런 성현들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런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께서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위대한 민족은 과거의 영광이나 현재의 이익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대적 사명을 깨닫고 이를 묵묵히 실천하는 민족이다. 저는 그래서 시대적 사명이 뭔가 생각해 봤습니다. 그게 바로 초종교, 초국가, 초인종, 초종파. 말로는 지구촌, 한가족 이렇게 얘기하면서 종교로 갈라지고 이념으로 갈라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또 일본 속담에 세 사람이 모여서 의논하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나온다 했으니 3국가가 힘을 합하면, 세 사람이 모여도 문수의 지혜가 나오는데 세 국가가 뭉친다면 많은 이런 세계가 곳곳으로 병들어 있는데 기계 문화, 물질문명으로, 그런 걸 우리가 꼭 열매 맺을 우리의 동양인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여기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1968년 그 때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국제회의가 열리기가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아시아 펜, 문인들의 세미나가 열렸을 때 대통령으로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렸고 이제 아시아가 인류역사 창조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아시아는 한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고 모든 것을 서로의 어려움을 문화를 교류하면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씀이시죠. 그게 바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바로 정신문화를 꽃피우자는 뜻이 아니엇을까 .벌써 지금으로부터 40년이 넘은 전에 아버지께서 새 역사, 인류역사 창조의 새로운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지금 새삼스럽게 와서 닿고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생각과 박근령씨의 생각을 박근혜 대통령도 갖고 있나?


=그럼요. 제가 박, 정말 국사에 많이 바쁘시니까 자주 가족을 챙길 수는 없고 챙기셔서도 안되죠. 그런 데 시간을 챙기시면 되겠습니까? 제가 10대에 뭐 어린 청소년도 아니고? 그러나 우리 가족에 대한 소위 비리라든가 그런 거를 철저히 단속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제가 어디 가서 무슨 얘기를 한다, 일본을 왜 갔다 이런 거는 다 보고를 받으시고. 그저 10번 잘하다 1번만 잘못해도 불호령이 떨어지는데 그동안의 뭐 여러가지 제 활동에 대해서 참견하지 않으신다고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다 대통령께서 하실 수 없는 이야기를, 그런 위치에 계시기 때문에 평민으로서 살아가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또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시지 않을까 이렇게 가늠하고 제가 얘기를 한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핏줄 같은 생각?.jpg
청와대


-방금 말씀하신대로 서로 이웃국가다. 아시아 3국이 서로 문화를 교류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 문제가 많아 오해의 원인이 되거나 아직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조금 전 니코니코 다큐멘터리 작품을 직접 보셨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감상을 말해달라.


=제가 철저하게 몇 번씩 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보면서 전체적인 느낌은 거기에 나와서 말씀하시는 분 중에 제가 공감하는 얘기를 하시는 분도 계셨고, 저렇게 말씀을 하신다면 우리 어렵게 국교정상화를 이룬 양국관계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이 세상은 뭐를 감추자, 속이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은 다 남아있는 것이니까 여기는 어른들만 살고 기성세대만 사는 세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자라나는 세대가 살고 있는, 우리는 지는 해가 되지만 떠오르는 태양들이 있습니다. 각 조국을 짊어지고 나갈 꿈나무들, 그런 청소년들한테 뭔가 좀 앞으로 삶을 살아나갈 때 그 반목보다는 화합, 전쟁보다는 평화, 그런 것을 더 생각하고 건설적인 그런 미래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굳혀주고 그런 것이 기성세대의 항상 그 시대시대마다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일관계가 조금씩 개선될 거란 조짐이 있다고 느끼나?


=그럼요. 특히 쇼겡 사마의 죄송합니다. 그 후지키 쇼겡 선생님 얘기를 하면서 그걸 입증을 나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학도병으로 과거 오키나와에 가서 그 분도 참전하게 됐고 또 한국인도 거기서 참전하게 돼가지고 아주 격전지였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이제 굉장히 조국이 그리워서 돌아갈 수는 없고 그러니까 그 때 구사일생으로 쇼겡 선생님하고 우리 그 한국 학도병이 같은 처지에서 그걸 뭐라 그러죠? 전우애 관계가 돼가지고 동지적으로 한 몇 달을 같이 이제 미국과 대치국면에서 이제 살게 됐는데, 지내게 됐는데 그 때 슈..게.. 선생님 성함? 후지키 쇼겡 선생님께서 너의 조국은 너의 나라는 저쪽 방향이니까 내가 죽더라도 나를 내 어머니 땅에 묻어달라 이렇게 얘기한 얘기를 듣고 내가 이 전우의 원을 풀어줘야겠다. 내가 이 전우보다 늦게 간다면. 그래서 죽으면서 이렇게 딱 말뚝을 받아놓고 저쪽으로 쓰러지는. 거기가 어머니, 어머니를 못 보고 죽지만은.


그 분이 70년이 지나서 2년 전에 작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평생동안 많은 일본의 그런 그 어떤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공헌하신 분이지만 그 분의 마지막 소원은 그 때 6,70년 전의 나를 조국에 묻어달라 했던 그 700명? 740명 정도의 전우들의 유언을 나는 실천하겠다, 의지를 갖고 계셨기 때문에 심지어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나를 일본에 묻지 말고 한국에 나를 위패도 그쪽에 가서 잘 봉헌을 해달라, 이런 유언을 남기셔서 지금 그 분의 위패가 지금 제주도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64년도, 5년도에 아버지께서 아버지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아버지를 찾아오셔서 그 얘기를 쭉 해주셨답니다. 그래서 오키나와에 있는 전우의 위패들을 한국에 봉헌하고 싶은데 한국정부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장충체육관도 필리핀이 지어줄 정도로 나라의 기술도 없고 경제적으로 힘들 때라 정말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겠지만 지금 나라 형편이 그렇게 될 수가 없으니 우리 쇼겡 선생님께서 대신 이렇게 위령제라도 잘 매해 해주신다니까 잘 좀 지내주시길 바란다고 하면서 소정의 기금을 전달하시고 또 이 분은 그거를 지키기 위해서 전우들과 이분이 말년에 스님이 돼버리셨어요. 그래야 사찰에다 봉헌도 하고 위령제도 지낸다. 그런 분이셨는데 그래서 아버지와 그런 미팅, 만남을 갖고 나오실 때 또 어머니께서 따로 옆방에 계시면서 잠깐 저를 좀 만나고 가주십시오. 어머니께서 곱게 한복을 입으시고 후지키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아주 90도 각도로 어머니께서 절을 하시면서 내가 조금 이걸 좀 준비했는데 저것은 국가에서 드리는 기금이지만 제가 조금 더 성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모시지 못해서 죄송하니 이걸로 또 그런 위령제를 잘 드려주시길 그렇게 모셔올 수 있을 때까지, 이렇게 얘기를 하셨다고 하고.


또 참 아버지께 그렇다면 오키나와 현지에 박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탑'이라고 하는 휘호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답니다, 쇼겡 선생님께서. 그래서 아버지께서 '한국인 위령탑' 해서 '대통령 박정희' 해서 그걸 드렸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정확한 날짜는 제가 아직 기억을 못하지만 그걸 그 분이 잊지 않으시고 제막을 하셔가지고 지금까지도 거기에 서 있어서 제가 한 번 꼭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 후지키 선생님의 유언을 어떤 한 개인분의 말씀이라기보다는 그게 일본 대다수의, 또 우리 한국인들의 우리 남아있는 또 후대의 후손들의 어떤 도리라고 생각하고 아버지께서 그런 분을 만나셔서 모셔오지 못하셔서 아쉬워 하셨다면 그런 저라도 한 번 그렇게 동참해서 최선을 다해볼까 생각하고 있고.


그런 분들이 일본에 참 많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을 제가 꼭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한국 우리 국민들께. 요시모토흥업이라고 하는 아주 103년이나 된 아주 유수한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라고 봐야 되겠죠? 거기에 대표로 계신 분께서 굳이 존함을 밝히길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대표님이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360번? 정도 한국을 방문하셔가지고 한국의 어디어디 음식점이 있는 것까지 빠삭이 다 아시고. 어려운 한센병 환자들 쪽으로 여러가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재단 이런 데에 많은 기부를 하셔서 일일이 다 뒤를 챙겨보시면서 돌봐주고 계시고. 언젠가 어떤 일이라는 걸 발표하는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척 들으면 알 수 있는 한국에서는 아주 굴지의 그런 연예 기획사가 있습니다. 거기에도 만들어지던 설립할 때에 많은 우리가 물심양면이라고 하잖아요? 기술,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아주 전폭적으로 도와주셔가지고 그 회사의 상장까지도 도와주시는 데 크게 역할을 해주신 분이 계시는데 그것을 꼭 한국의 여러분께 알리고 싶고요.


또 우리 국제영화제라고 있죠? 부산국제영화제, 거기도 이제 만들어질 때 우리가 여러가지 세계적인 기반이 다져지기 전이고 맘이 앞서갖고 만들었는데 그거를 아주 세계적인 그런 영화제로 만드는 데에 또 물심양면으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부분을 많이 지원해 주신 분이 바로 요... 요시모토 흥업의 대표님께서 하신 일인데 앞으로 이렇게 숨어있는 아름다운 우리 한일관계의 일어난 일들을 민간 차원에서 일어난 일들 저는 많이 알리는 것이 우리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양국이 아버지의 유훈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한일 국교정상화의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업데이트 된 그런 결실을 맺는 그런 차원에 미력하나마 제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80 6

박근령씨가 일본 인터뷰에서 한 말⑤ - 천황폐하께서 사과했는데 뭘 또 사과?

  • *박근령 발언
  • *일본 니코니코 인터뷰
  • *과거사 사과 했잖아
  • *천황폐하도 했잖아
  • *일본의 상징=천황폐하
  • *그니까 사과타령 좀 그만해
  • *한국 창피해
망언제조기신 듯.png
니코니코 영상 캡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박근령씨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저와 같이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정치권의 관점에서 보면 그걸 자꾸 정쟁으로. 특히 이런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말 나라를 걱정하는 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저는 한 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를 통해서 나라 경제가 발전을 했습니까, 파탄이 났습니까. 그것부터 묻고 싶고 그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반대했던 사람들까지도 저희 아버지를 친일반민족행위라고 비판했던 사람들도 그 경제발전의 열매를 같이 향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서독간호사, 광부 또 월남파병해서 뭐 여러 그 아랍권을 뭐라 그러죠?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서 많은 근로자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여러가지 경제기반을 마련했지만 하여튼 분들의 희생으로 인해서 맺어진 아버지 시대 때 그 땐 국민이 혼연일체가 돼서 정말 그 경제를 고도성장하는 데 모두 총력을 기울였는데 그 열매를 그들이 향유하고 있습니다. 그걸로 고속도로도 다니고 그 분들이 고속도로도 안 다니느냐 그건 아닙니다. 그 분들도 이제는 미래지향적으로 가는 것이 그분들의 자녀 시대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감히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린다면 과거에 자꾸 사과라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종이 뒤적) 제가 수상님들의 존함을 일일이 기억을 못하지만 1993년에 고노 담화가 있었고 또 물론 1964년 아버지의 오히라-김종필 담화에서도 아 참 과거사에 대해서 사과한다는 뜻에서 경제기반을 마련할 큰 돈을 아까 말씀드린대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일일이 그 때 그 때 못갔지만 자녀들부터 잘 살게 해서 그 분들을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1993년도에 호리카와 모이히토?총리께서도 사과의 말씀을 하셨고, 이거는 총리가 하셨기 때문에 국가 대 국가로서 그 당시에 한국 정부가 받아들였고. 1996년도에는 기억하는 대로는 하시모토 유타로 수상께서도 또 말씀을 하셨는데 총리가 바뀔 때마다 자꾸 사과하라고 하는 그거는 참 남의 나라 먼 나라에서 볼 때 우리가 한 동네에서도 이웃하고 자꾸 타박하면 창피하듯이 과거 문제를 가지고 자꾸 갈등을 빚는 건 국가적으로 창피한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창피하다고요?.jjal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1980년대에 전두환 대통령 재직시에 전두환 대통령께서 일본을 방일하셨을 때 그 대 작고하신 히로히토 천황께서 천황폐하께서 전두환 대통령 각하 앞에서 통석의 염이라고 해서 우리가 아마 일본하고 한문을 쓰는 건 똑같이 쓸 것입니다. 애통하다의 통자와 애석하다의 석자. 통석의 염, 생각 염자를 표현하시면서 과거 6세기, 7세기 때 일본 황실이 만들어지는, 일본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신라와 백제와 같이 협력해서 국가를 건국한 것으로 물론 그 전에도 다 있지만 야마토엔가요? 제가 역사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반세기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정말 애통한 마음으로 여러분께 사과한다는 그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일본은 우선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싶으냐면 일본의 상징은 총리가 아니고 천황폐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국은 각 나라마다 민주주의를 다 색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공통분모는 민주주의지만 우리가 서울에서 일본 갈 때 페리호로 갈 수도 있고 동해로 갈 수도 있고 서해로 갈 수도 있고 비행기로 갈 수도 있고 다 방법이 틀리듯이 목적은 하난데 민주주의 그 나라의 여러가지 여건에 따라서 우선 영국은 여왕을 중심으로 성공회 민주주의를 하고 있고 미국은 청교도 유대 민주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긍까 링컨 대통령 상 앞에 가서 어떻게 보면 모두 절 하고 좋아하고 워싱턴 동상 앞에 가서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잇겠지만. 청교도를 근본으로 한 청교도 유대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고. 중국은 삼황오제를 근본으로 한 중화인민사회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본은 황국사관을 근본으로 한 천황민주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리가 선거에 의해서 바뀐다 하더라도 이런 표현, 저런 표현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고 정책을 펴나간다 해도 천황께서 어떻게 언급을 하셨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느냐. 저는 그런 식으로 우리는 받아들여야.


왜 전두환 대통령 때 왜 전두환 각하 내외께서 천황폐하를 그렇게 알현하신 거에 대해서 말을 안 하고 있느냐. 그런 것이 결국은 우리가 일본과 한일국교정상화, 아버지께서 분명히 정상화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말장난 같지만 말장난이 아니고 비정상화를 정상화로 하겠다는 그런 정치 코드가 있습니다. 키워드가 있는데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정상화 시켰다, 부부 사이에도 정상화라는 건 안 좋았던 사이도 가까워지는 거 그게 정상화입니다. 갈등을 빚을 때 비정상이죠. 지금 북한하고는 비정상이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이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동족상잔의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만.



천황폐하 소리 좀 안 나게 해주세요.jjal


그래서 그것이 결국은 노무현 대통령, 저희 아버지를 그렇게 친일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얘기했던 그 국회의원들까지도 보니까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 25주년, 40주년 할 때 너무나 가깝게 일본과 경축행사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는 내가 가까운 건 좋은데 남이 가까운 것은 안 된다 하는 건 결국 북한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설마 그런 생각을 하신 건 아니었겠지요. 그렇듯 노무현 대통령 각하께서도 주변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만 자꾸 강요해서 마치 그렇게 일본하고 자꾸 과거사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들만이 노무현 대통령을 후보 시절에 강력하게 지지한 것으로, 어떻게 보면 착각도 좀 있고 그런 부분을 저는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출발을 지난번에 우리 대통령께서 일본과의 경제 관계도 좀 더 열심히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하신 그런 발표로서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고 또 지근거리에서 보필할 수 있는 비서실장께서도 얼마전까지 일본 주 대사로 활동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그 분을 워낙 인품이 좋은 분이시지만 그 분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하실 때는 그만한 일본과의 관계를 좀 더 건설적으로 경제적인 입장에서, 자꾸 정치적인 입장에서 강조하는 거를 대통령은 이쪽 말도 듣고 저쪽 말도 듣고 그렇게 저는 좋은 신호탄으로 보고 있습니다.

87 2

박근령씨가 일본 인터뷰에서 한 말④ - 위안부 문제 갖고 일본한테 뭐라 하지마

  • *박근령 발언
  • *일본 니코니코 인터뷰
  • *종북세력 쩔어
  • *좌경화된 대한민국
  • *황후폐하 ㄳㄳ
  • *노무현 전 대통령 디스
  • *우리의 이웃 일본을 내비둬

-그런 의미에서 언니에 대해 물어보겠다. 언니는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어린 시절에 일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


=워낙 저는 공통분모, 형제 가족지간에는 서로 혈액형이 틀리고 해도 부모님에 대한 부모님이 하신 일에 대한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에 과거사 문제로 박근혜 정부에서 많은 입장을 표명했지만 바로 얼마 전에 참 천만다행히도 일본과 협력관계를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발표를 하신 거에 대해서 형님 대통령께 찬사를 보내고, 또 많은 국민들이 그걸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시길 바라죠.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에는 정말 정치권에서 좀 말씀드리기는 외람되지만 친북 심지어 종북적인 세력이, 지금 이 말씀 드리기 전에 우리는 감히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공산화만 되지 않았지 이미 좌경화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회적인 배경에서 볼 때 그 정치권이 미국 의회와 같이 민주당, 공화당이 서로 복지 문제라든가 여러가지 정책에 대해서는 서로 갈등, 갑론을박을 하고 그런 건설적인 정쟁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은 이념적으로도 굉장히 대북 정책이 틀려서 참 그런 각도에서 우리가 이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우리 형님, 대통령을 저는 이렇게 입장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일본에 다 알려지지 않은, 아는 분들은 아시지만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는 분들은. 일본을 대표하는 굴지의 봉사재단, 이런 데에 계신 분들이 아버지의 정부와 항상 친밀하게 교류하시면서 그 때 우리나라 심장병 어린이도 치료를 해주시고, 그런 걸 부탁을 해서. 그 분의 아드님이 심장병 치료 어린이를 해주는 데 15년 정도가 걸렸다고 합니다. 그 재단에서 돈을 바로 내지를 않고, 그렇게 하면 그게 봉사냐. 이미 돌아가신 분이지만. 니가 정말 봉사적으로 그 어린이를 치료를 해주려면 본인의 용돈에서 치료비를 제하면서 치료를 해줘라. 그래서 13년인가 15년 만에 그 돈을 다 갚았다고 제가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록도 같은 데, 한센병 정착촌이 있고 한데 좀 잘해드리고 싶어도 나라가 어려워서 그런 재단에 부탁을 하셔서 거기서 새로운 병동도 지어주시고 그런 일화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감사드리기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주 젊은 날 아버지 돌아가신 직후에도 자유로운 몸으로 일본에 일부러 방문해서 감사를 표하고 또 이따 기회를 주시면 얘기를 드리겠지만 그런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 간의 또 민간 차원에서 참 많은 협조가 이뤄져서 참 국익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이 너무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저는 앞으로 그런 일을 많이 알리는 데도 좀 관심을..



-한센병 얘기는 나도 몰랐다. 한일 국교정상화 직후에 일어난 상황으로 물론 한국에서도 한센병에 대한 차별이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치료를 위해 일본이 한국에 협력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더 말씀을 드리자면 이 자리를 빌어서 황후 폐하께 대한민국 일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착촌이 참 많고 한센병을 그 갖고 있는. 근데 하.. 어느 날 우리 성나자로 병원에서 한 수녀님께서 우리 지금의 황후폐하께서 젊으신 날 진정서를 보내서 보내드리면서 좀 도와달라고 우리 한센, 왜냐하면 일본은 옛날부터 한센병을 치료하는 데 아주 선구자적인 치료방법을 개발해서 많은 혜택을 받고 환자들이있다는 얘기가 유명합니다. 그래서 그 얘기를 알게 된 수녀님이 황후 폐하께 편지를 보내서..


황후...폐하...?.jjal


-일본이 한센병 치료에 막 성공했을 시기인데 한국은 치료가 불가능해서 일본에 협력을 요청해서 대처했다는 건가?


=한국은 어느 정도였냐면 그 정착촌에서 이렇게 씨돼지를 줘서 사람들이 기피를 하니까 거기서 잘 자활의 길을 열어보시라고 이렇게 도와드리고 또 계란도 좀 많이 생산해서 팔으라고 하면 저거는 한센병 환자가 만든 거니까 먹으면 안 된다고 그래갖고 팔리지가 않아서 한 번은 어머니께서 한 번은 어머니 돌아가시고 우리 형님, 액팅 퍼스트 레이디 시절에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서 군납을 하도록 그렇죠. 그렇게 해서 다 소비할 수 있도록 한센병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그렇게 됐었고. 그래서 그 황후 폐하 이야기를 잠깐 더 드리자면 그 당시에 그 편지를 받으시고 그 분이 가네야마 당시 주한 일본대사한테 지시를 하셔서 빨리 이 일을 처결하라 하셔가지고 나자로 병원에 그게 이제 거기 안성에 있는 나자로 병원을 지어주시고 또 평생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까지 지어주시고. 그래서 많은 한센병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한 전문가들이 많으셨지만 우리 한 십수년 전의 우리도 그 덕택으로 한센병 환자가 더 이상은 발생하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교 정상화 직후의 상황이긴 하지만 한일 관계가 나빠 그런 협력을 받지 못했다면 한센병 근절은 힘들었겠다?


=그럼요 애를 썼어도 아무리 좋은 차가 있으면 뭐합니까? 운전할 사람이 없고 또 운전할 사람이 있어도 기름이 없으면 차가 굴러가지 않죠. 또 뭐가 있.. 그래서 그 때 그 병원이 개원할 때 우리 액팅 퍼스트 레이디 시절에 우리 형님께서 가서 기공식, 착공식 아, 준공식 축사도 하시고 기억이 납니다.



-그런 에피소드가 일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과거 일본이 그렇게 한국에 협력을 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인은 이런 일을 알고 있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점점 알려질 기회를 왜 놓쳤느냐고 하면 아까 말씀드리다 말았는데 노무현 대통령 그 정부가 출범하면서 느닷없이 갑자기 저희 아버지에 대해서 아버지를 비롯한 각 국회의원들의 선친들에 대해서 친일 거기다가 또 반민족,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들의 명단을 발표해야 된다. 또 대통령, 청와대죠. 직속 산하에다가 여러가지 기구를 줬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그런 거를 두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박근혜 의원, 그 당시에. 그러니까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죠, 정쟁에.


그 때 저는 그것이 왜 부당하다 생각하느냐 하면 이미 이승만 대통령이 재직시 지난 1948년도에 반민특위, 해서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 반민특위라는 기구에서 모든 문제들, 과거사에 대한 걸 모두 처결했습니다. 그러고는 한 20년 후에 아버지 시절에는 일한국교정상화를 하셔서 과거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협상을 통해서 서로 이렇게 미래를 향한 그런 이웃으로 출발한다, 새롭게. 이렇게 방점을 찍었기 때문에 이걸 자꾸 얘기한다는 것은 마치 뭐 한 번 바람을 피고 또 이웃이 있다면 바람을 피운 남편한테 계속 화해한 다음에 계속 타박한다든가 이웃이 있다면 그 이웃이 옛날에 우리 집안에 어떤 피해를 입혔다, 그래서 그거를 아버지 시대에 선친 시대에 다 화해한다는 어떤 걸 표방하고 다 했는데도 그 다음 대에서 계속 얘기하는 그런 말하자면 역사를 후퇴시키는 그런 모양이기 때문에 그거는 국익에 피해를 줄 뿐이고.


단지 위안부 할머니들, 여사님들에 대해서는 하도 얘기를 많이 하시니까 제가 말씀을 좀 드려보자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한일협정을 통해서 우리가 많은 자립경제, 자주국방이 이뤄질 수 있는 그런 기반이 마련됐기 대문에 위안부의 과거를 과거사를 갖고 계신 분들한테는 직접적인 그 때 그 때 배상 같은 어떤 그런 보상이 가지는 못했다 해도 나라에 더 큰 재원이 마련될 수 있는 계기를 통해서 이제는 이웃에 대고 자꾸 탓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나라가 잘 살게됐기 때문에 옛날에는 관심을 갖고 싶어도 먹고 살기 바빴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도 이제 경제가 많이 발전됐으니 이제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나의 어머니, 나의 할머니, 나의 누나분들을 자꾸 이웃에다 대고 말하지 말고 그때 내가 없었으니까 우리 어머니 좀 도와줘,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나부터 잘 살게 만들어 놓고 내가 잘 살게 됐으니 내가 아직까지 살아계신 어머니를 모신다는 그 위로를 해드리면서 이렇게 간다는 것이 더 중요한 우리의 몫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헐.jjal


91 3

박근령씨가 일본 인터뷰에서 한 말③ - 한일국교정상화 한 아빠는 킹왕짱

  • *박근령 발언
  • *일본 니코니코 인터뷰
  • *한일국교정상화 덕분에
  • *한국 경제 발전
  • *울 아빠 짱
  • *일본은 이웃사촌
자랑스런 내 아부지.jpg


-예전에 한국이 가난했을 때 일본 학용품이 인기가 많았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한일협정을 맺고 한일 국교 정상화를 이뤘다. 친일파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로 집안에서는 일본에 대해서 부모님께 어떤 식의 교육을 받았나?


=특별히 받은 것은 아니지만 우선 아버지께서는 대통령으로서 특히 아버지께서 대통령으로 취임하시던 때가 63년 말이었는데 아, 63년 여름인가 그랬습니다. 그 때 사진을 보면 여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국제정세는 공산진영과 민주진영이라는 양대 진영이 두 축을 이루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참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것은 지도자는 100년 앞을 내다보고 일을 해야 되는데 아버지가 닉슨 독트린이 발표될 것을 아셨겠습니까? 모르셨죠. 그런데 우리는 전쟁에서 폐허가 돼가지고 초토화가 됐습니다. 전 국토가 초토화가 됐는데 우리는 그럴려면 굉장히 호전적인 북한이 지금 평화협정을 맺지 않고 우리는 휴전협정을 맺은 전시중인 나라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햇습니다. 하나는 경제발전, 또 하나는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동반자가 필요하셨습니다.


또 우리나라 속담에 이웃사촌이라고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나 가족이 옆에 없으면 뭐합니까. 외국 유학을 가서 없다. 그러면 역시 이웃사촌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교 정상화만이 살 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일본과 일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죠. 그랬던 아버지가 참 자랑스럽고 그래서 그 때 일본에 유상 무상의 원조를 받아서 특히 포항제철이 우리 산업화의 아주 원동력이 됐는데 아마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 또 한 곳은 제가 메모해 놓은 것을 지금 생각이 안 나는데 그렇게 세 굴지의 회사에서 자본과 기술을 다 제공해 주셔서 그런 포항제철을 만들게 됐고 그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기술력이 없어서 장충체육관을 하나 짓는데도 필리핀의 기술과 원조를 받아서 지었습니다. 지금도 있지만. 그래서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참 아버지가 참 잘 하신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저는 일본과의 관계를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때 한일국교 정상화가 있었기에 한국의 경제 발전이 가능했다는 얘기?


=네네. 결정적이었죠.



-국교정상화가 이뤄졌을 당시 박근령씨는 10살인데 그 때 기억이 다 나나?


=초등학교 4학년. 네. 초등학교 5학년, 4학년. 아버지께서 취임하시자마자 바로 국교정상화를 추진하셨습니다. 그래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어땠나?


=그 때 한일회담 반대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청와대 앞까지 데모대가 와 있어서 등교하려고 하다가 도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경찰하고 대치 상태로 있고 그랬..



-아버지가 하신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상황이 딸의 입장으로서 마음이 아팠었나?


=그럼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분들도 다 이해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라가 발전했기 때문에.

71 9

박근령씨가 일본 인터뷰에서 한 말② - 어머니에 대한 기억

  • *박근령 발언
  • *일본 니코니코 인터뷰
  • *육영수 여사
  • *교육은 엄격해야 한다
  • *요즘 청소년은 공부에 집착해
  • *응??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저는 여러가지 비영리적인 법인에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시아 문화 콘텐츠 일을 새롭게 시작을 해서 과거에는 어린이 교통안전에 대한 협회도 만들고, 또 재난구호 이런 데 일도 좀 참여해보고, 어머니가 설립하신 어린이회관도 맡아서 운영도 해보고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가지 일을 했을텐데 지금 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게 된 이유는?


=나이를 들어가면서 제가 누구나 다 어머니가 롤모델이고 또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어떤 자녀라도. 저도 역시 그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지만 가장 그래도 부럽고 그렇게 돼봤으면 하는 분들 중에는 테레사 수녀, 어머니께서 대통령 부인으로서 계실 때 그 참 많은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셨던 그 모습이, 너무 바쁜 어머니 때문에 항상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 방문이 걸려있고. 친구 집에 가면 막 친구가 왔다고 업어주시고 반겨주시던 어머니, 친구가 부러웠지만 이제 나이 들어서 생각해보니까 얼마나 참 힘든 일을 묵묵히 하셨는데 제가 어머니보다 지금 어머니는 49에 돌아가셨고 저는 지금 60세를 넘겼습니다. 그래서 저도 뭔가 기회만 된다면 좀 봉사적인 일을 하다 가야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故 육영수 여사 추모제사.jpg
공화당



-어린 시절 특히 기억에 남는 어머니와의 추억은?


=여기가 마침 일본인데 60년대 우리나라가 많이 가난했을 때 인기 우리 초등학생들, 또 중학생들 가운데 인기상품이 뭐냐면 일본에서 만든 일제 신발주머니, 학용품. 그 때 학용품을 우리가 잘 못 만들 때 시절이라 친척이나 지인들이 일본에 가면 그런 선물을 사와요. 미키마우스 연필 뭐 그런 걸 너무나 예쁘게 만들고 하니까 그런 걸 학교에 가지고 가보고 싶은데 그 때는 어머니께서 학교에서 정한대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엄격하게. 그래서 그걸 어머니 몰래 가지고 가다가 들켜가지고 굉장히 걱정을 크게 드린 적도 있고. 그리고 그런 걸 어머니께서는 잘 아끼셨다가 굉장히 그 열심히 부모를 공양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어린이들한테 선물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 제가 걸스카웃을 했었는데 그 때 동남아쪽으로 젬보린가 그런 거 때문에 모두가 여행을 간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특별히 잘 한 일도 없는데 아버지가 대통령이시다면 이것도 공무원이신데 그렇게 그런 혜택까지 누리려고 하지 말라, 그래서 저는 못갔습니다. 그래서 많이 속이 상했는데 나중에 우리 형님이 전자공학과를 1등으로 졸업하고 나니까 어머니께서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유학을 불란서로 보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 유학을 마치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때 중간에 돌아와서 아버지를 우리 형님이 돕게 됐죠.


그리고 교육은 엄격해야 한다는 게 저희 어머니의 생각이셨고 다른 친구들은 어머니한테 심지어 아버지한테도 반말을 쓰고. 근데 우리는 반말을 못쓰게 하셨고. 남동생한테 10살도 안 된 남동생한테 이렇게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면서 '지만아, 너는 나중에 색시감을 구할 때 아주 그 어머니가 호랑이 같은 어머니를 구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는데 지금 너무 청소년들이 공부에만 집착하고 학력 위주로 가는 걸 보고 아, 저 어머니의 말씀이 소중한 것을 이제서야 느낍니다.


갑자기 웬 학력 얘기?.jjal


84 2

박근령씨가 일본 인터뷰에서 한 말① - 형님 자랑으로 시작

  • *박근령 발언
  • *일본 니코니코 인터뷰
  • *박근혜 박근령
  • *형님 자랑
  • *옛날엔 대학교에 개근상이 있었나?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가 8월 4일 일본 포털 '니코니코'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받아적은 것이다. 자매 아니랄까봐 박근혜 언어 존똑 인터뷰는 먼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언니 박근혜 대통령과의 어렸을 적 기억을 묻는 걸로 시작한다.


-언니와 가장 마지막에 만난 게 언제?


=글쎄요. 생각이 잘 안납니다. 매일 TV로 시청하고 있고, 또 언니는 공인이시기 때문에 네, 지금 어떤 사사로운 만남보다는 정말 이 짧은 황금 시기에 더 많은 일을 우리 형님이 뜻하는 바를 다 좀 많이 이루고 이루시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일본에는 자주 오나?


=네. 자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네.



-일본에 대한 인상을 솔직하게 말해달라.


=자주 오지만 항상 느끼는 것은 일본에는 한국에 없는 큰 장점이 있다. 그게 생활예절, 문화라고 하는 しつけ(예의범절을 가르침)라고 들었습니다. 항상 그 인사성이 밝으시고 모두, 예절도 밝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그런 것이 아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서 우리 한국도 과거에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참 주변 국가에서 찬사를 해주셨는데 지금은 그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그 부분을 많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대통령이고 지금은 언니가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딸로 태어난 성장환경이 특별했는데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저희 보통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교육을 시키실 때 어떤 음.. 방침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음.. 네 특히 우리 가정은 우선 종교의 자유가 아주 철저히 보장이 되어 있어서 외할머니는 불교, 우리 형님은 천주교 영세를 받고 또 아버지는 뭐 참 고향에서 기독교 교회도 많이 다니시고. 그렇게 다양한 종교를 인정을 그 네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가족 간의 화합이 있었습니다. 음.. 어.. 네. 그리고 또 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미사에 참석해 기도하는 박근혜 대통령.jpg
청와대


-아버지가 대통령이라 바빴기 때문에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적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나?


= 아버지는 늘 그냥 국정 일을 보시느라고 항상 손님들하고 같이 계시고 또 TV를 통해서 뉴스에서 뵈는 아버지 모습이 생각나고. 음.. 또 그 때는 반공교육을 철저히 국가적으로 시킨 때였기 때문에 또 상당히 도발이 많았고 북한의. 심지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사람들이 우리한테 '너의 아버지는 미국 때문에 돌아가셨다' 핵무기 얘기를 해가면서, 그렇게 얘기를 해도 얼마나 철저하게 안보교육을 받았으면 저 뿐만 아니라 그 때 살았던 젊은 날을 보냈던 사람들한테. 그래서 저는 아버지 교육에서 가정보다 중요한 건 국가다. 이래서 저는 아버지를 미국이 돌아가시게 했다 해도, 그게 사실이라 해도 반미주의가 될 수 없는 그런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언니 박근혜 대통령과는 2살 차이가 난다. 어린 시절 언니는 어땠나?


=우리가 혈액형도 다르지만 우리 언니, 형님은 굉장히 모범적인 삶을 학창시절부터 사셨는데 예를 들어서 아주 그냥 아침에 기상하는 것도 정시에, 식사 하는 시간도 정시에, 운동하는 시간도 아주 정시에 하는. 우리 모두 늦잠도 자고 그렇게 철저한 규칙적인 생활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했고.


보통 시험을 학창시절에 보지 않습니까? 보통 국어, 영어, 수학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 그거 공부하기만도 벅차서 일단 그 시험이 끝나고나면 시험 다 본 것 같이 홀가분했는데 그 형님 친구들 말에 의하면 체육시험 보는 날까지도 교과서를 들고 그래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음.. 네..


그래서 어머니께서 우리 형제한테 써주신 휘호가 있는데 음.. 동생은 인내지덕, 느긋하게 앉아서 한 시간만 좀 책을 보라고 30분도 안 돼서 친구 만나러 나가고. 또 저는 중형지덕. 친구 좋다고 안 돌아와요. 12시까지 안 들어오지 말고 중형지덕. 또 우리 형님은 관용(관형?)지덕. 한 번 독서삼매경에 빠지면 옆에서 막 그릇이 깨져도 잘 모르는. 그래서 공부는 잘 했지만 또 그런 동생들 일에 더 깊이 관여하시도록 관형지덕을 써주신 것 같습니다. 네 그랬던 네..


현직 대통령 딸내미의 성적표.jpg



-언니와 성격이 정반대?


=네



-어렸을 때 언니와 싸운 적이 있나?


=네. 싸우면 제가 항상 이겼는데. 저는 좀 그렇게 악바리를 뭐라고 일본말로 표현해야 될지 모르겟습니다. 굳이 형님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나 생각나는 일화는 그 대학교를 전자공학과를 선택해서 갔는데 그 때 졸업을 할 때 아버지가 대통령 재직시라서 학교에도 아버지를 반대하는 교수님도 많으셨고 또 그래도 대통령 딸이니까 보호를 우리가 해줘야겠다 하는 교수님도 계셨는데 평소에 어떤 교수님 한 분이 저희 형님만 보면 복도에서 봐도 굉장히 냉랭하게,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교수님이었죠. 인사도 받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그 냉랭한 분이셨는데 이제 졸업하면서 그 이제 졸업식날 상장을 주는 학생들에 대해서 졸업생들에 대한 심의를 해서 교수회의를 열었는데 그동안에 형님한테 굉장히 친절했던 교수님들은 우연히도 저희 형님이 정근, 개근, 개근상, 정근상 또 우등상, 전자공학을 1등으로 졸업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상을 보니까 다 박근혜 학생한테 너무나 상이 많이 가게 생긴 거에요. 채점을 하다보니까.


그러니까 평소에 친절했던 분이 '아, 이거 다 주긴 줘야 되겠는데 잘못하면 대통령 딸이라서 우리가 다 준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그냥 한두 개만 주자. 다 안 주면 어떻겠냐'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 때 갑자기 평소에 그렇게 냉랭한 표정으로 형님을 대했던 교수님이 그냥 그 한국 표현으로 쌍지팽이를 짚고 나서시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시면서 '무슨 소리냐. 대통령 딸이라도 우등했으면 우등상, 정근했으면 정근상, 개근했으면 개근상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얘기를 하셔서 평소에 교수님들이 의아하게 교수님을 쳐다봤는데 그분이 그렇게.


그 때문에 상을 다 휩쓸게 됐습니다. 근데 그 교수님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이렇게 어쩌다가 길 가다가 마주치면 그렇게 우리 형님 안부를 묻고 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인데도. 그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그만큼 언니는 부지런하고 대통령의 딸로서 공부도 좋아하고 굉장히 우수한 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내심이 강했죠, 공부를 좋아했다기보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마.

76 5
Loading...